글 · 이융희
장르 비평가, 문화 연구자, 작가. 한양대학교 국문학 박사 과정 수료 후 2006년 <마왕성 앞 무기점>으로 데뷔. 현재 콘텐츠 제작 기업 지티이엔티 콘텐츠제작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웹소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판타지 #게임 #역사>, <웹소설 보는 법> 등의 저서가 있다.
재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10여 년 전 두어 번 얼굴을 스치며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갑작스러운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SNS에 웹소설과 관련된 글을 계속 올리고 교육도 한다고 하니 도움을 구한 것이다.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일은 언제나 환영이라 연락처를 넘겼다.
10년 만에 만난 그의 삶은 안정적으로 흘러온 듯 보였다. 여러 방송사를 넘나 들며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을 굵직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로 활동하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10년 만에 만난 그의 삶은 안정적으로 흘러온 듯 보였다. 여러 방송사를 넘나 들며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을 굵직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로 활동하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방송은 재미있어요. 나름 제 역량도 인정받았고요. 그런데 일하는 시간이 유동적이라 아이를 제대로 보살피기가 어렵겠더라고요.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보니 ‘웹소설’이라는 분야가 눈에 띄었어요.”
역시 그는 성장가도에 있는 웹소설 시장을 알아봤다. 2023년 조사 결과 웹소설 시장 규모는 무려 1조 원! A4용지 4~6페이지짜리 짧은 글 한 편이 100원이고, 이러한 글이 수천 편씩 연재되고 있다. 장르는 주로 판타지나 무협 혹은 로맨스다. 어린 시절 한 번쯤 읽어봤을 만한 <영웅문>, <퇴마록>, <드래곤 라자>, <그 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등을 떠올리면 된다. 공간 제약 없이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쓰고 발행할 수 있는 매력적인 부업이다 보니 팬데믹 이후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 아마추어 작가만 20만 명이 넘는 시장이라고 하니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나를 찾아온 그도 웹소설 작가에 도전하기 위해 인터넷 강의 몇 개를 듣고 작법서를 읽으며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침 ‘네이버’에서 매년 웹소설 신인 작가를 뽑는 공모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방송국 메인 작가 경력이 있는 그는 그 곳을 목표로 자신만만하게 글을 썼다. 그러나 실패했다.
현재 가장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웹소설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 웹소설’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들.
디지털 위에 펼쳐지는 새로운 서사
그의 생각은 웹소설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착각이다. 웹소설과 다른 소설의 차이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웹소설은 스마트 기기를 통해 읽는 디지털 콘텐츠다. 둘째, 웹소설은 분절된 형태로 거래된다.
첫 번째 내용부터 살펴보자. 웹소설은 ‘도서’가 아니라 스마트 기기를 통해 유통된다. 그렇다 보니 한 문단에 들어가는 글자의 길이, 서사의 방식이 스마트 기기 액정의 좌우 폭에 좌지우지된다. 여기서 핵심은 스마트 기기가 독서를 위해 만들어진 매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빛으로 콘텐츠를 전달하기 때문에 눈이 쉽게 지친다. 미세하게 점멸하는 광원, 끊임없는 터치로 액체처럼 움직이는 화면은 독서를 어렵게 만든다. 아마 스마트 기기에서 장문의 글을 읽다가 도저히 집중이 안 돼 몇 번이고 화면의 위로 시선을 돌린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글이 하나의 주제로 길게 이어지는 것과 행이 나눠지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차이를 낳는다. 다시 말하자면, ‘엘리베이터’를 주제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단순히 스마트 기기에서 읽기 편하도록 적당한 위치에서 행을 나누는 순간 두 문단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중언부언의 글이 돼 버린다는 뜻이다. 반복되는 문장은 독자들에게 지루함을 준다. 만연하게 묘사된 서술 또는 너무 함축적이고 시적으로 쓰인 일반 도서의 문장이 웹소설에서는 환영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그냥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듯 편안하고 읽기 쉽게 쓰인 문장이 웹소설의 문장이 된다.
그런데 글이 하나의 주제로 길게 이어지는 것과 행이 나눠지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차이를 낳는다. 다시 말하자면, ‘엘리베이터’를 주제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단순히 스마트 기기에서 읽기 편하도록 적당한 위치에서 행을 나누는 순간 두 문단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중언부언의 글이 돼 버린다는 뜻이다. 반복되는 문장은 독자들에게 지루함을 준다. 만연하게 묘사된 서술 또는 너무 함축적이고 시적으로 쓰인 일반 도서의 문장이 웹소설에서는 환영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그냥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듯 편안하고 읽기 쉽게 쓰인 문장이 웹소설의 문장이 된다.
‘분절된 거래’ 역시 웹소설의 서사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보통 일반인이 소설책 한 권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시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웹소설 한 권 분량을 읽기 위해 소모되는 시간은 25일이다. 왜냐하면 웹소설은 옛날 신문 연재 소설처럼 하루에 한 편씩 연재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권의 소설을 읽을 때 ‘책’이라는 공간 속에서 기억력을 총동원한다. 100페이지에 있었던 글을 200페이지의 문장으로 떠올리고, 다시 50페이지로 되돌아가서 ‘아!’ 하고 깨닫기도 한다. 이렇게 색인(Index)을 통한 독서는 종이책의 특징이다. 그러나 웹소설에서는 이것이 일(Day) 단위로 변경된다. 현대인에게 3~5분 정도 짧게 읽은 몇 주 전의 문장을 떠올리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 보니 감정과 정보를 누적하는 추리, 호러, SF 같은 장르들이 웹소설에서는 잘 구현되지 않는다.
우리는 한 권의 소설을 읽을 때 ‘책’이라는 공간 속에서 기억력을 총동원한다. 100페이지에 있었던 글을 200페이지의 문장으로 떠올리고, 다시 50페이지로 되돌아가서 ‘아!’ 하고 깨닫기도 한다. 이렇게 색인(Index)을 통한 독서는 종이책의 특징이다. 그러나 웹소설에서는 이것이 일(Day) 단위로 변경된다. 현대인에게 3~5분 정도 짧게 읽은 몇 주 전의 문장을 떠올리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 보니 감정과 정보를 누적하는 추리, 호러, SF 같은 장르들이 웹소설에서는 잘 구현되지 않는다.
환상과 대리만족의 세계로 안내하다
이런 문장과 매체적 특성 속에서 환영 받는 건 이 세계의 팍팍하고 힘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환상들이다. ‘내가 지금 맡은 업무가 모두 성공적으로 끝나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오랫동안 현장에서 쌓은 경력과 능력을 통해 사회에서 대우받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 논리지만 당연하지 못했던 것들이 모두 이상적으로 구현된 사회가 웹소설의 배경이 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되고 싶었던’ 주인공이 살아가는 모습을 엿보며 대리만족하면서 일상을 버티고 살아갈 힘을 얻고 스트레스를 푼다. 그렇기에 웹소설은 대부분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래서 이 글의 엔딩도 해피엔딩이다.
나를 찾아왔던 그는 웹소설 작가로 데뷔했다. 한 작품을 네이버에 론칭했고, 두 번째 작품은 수천만 원의 계약금으로 인정받으며 곧 론칭을 앞두고 있다. 나와 함께 준비하는 세 번째 작품도 반 이상 완성됐고, 그의 머릿속에는 벌써 열 번째 작품까지의 소재가 가득하다. 그의 목표는 이 세계에서 수십억의 돈을 버는 것이다.
마냥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다. 운이 좋다면 그 작품 중에서 어떤 것은 웹툰으로 재탄생할 수도 있고, 어떤 것은 <재벌집 막내아들>이나 <내 남편과 결혼해줘>처럼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될 수도 있다. 웹소설의 세계는 계속 발전하고 있고 한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웹소설을 한 번 접해본다면 여러분의 인생에도 작은 즐거움 하나가 자리하지 않을까.
나를 찾아왔던 그는 웹소설 작가로 데뷔했다. 한 작품을 네이버에 론칭했고, 두 번째 작품은 수천만 원의 계약금으로 인정받으며 곧 론칭을 앞두고 있다. 나와 함께 준비하는 세 번째 작품도 반 이상 완성됐고, 그의 머릿속에는 벌써 열 번째 작품까지의 소재가 가득하다. 그의 목표는 이 세계에서 수십억의 돈을 버는 것이다.
마냥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다. 운이 좋다면 그 작품 중에서 어떤 것은 웹툰으로 재탄생할 수도 있고, 어떤 것은 <재벌집 막내아들>이나 <내 남편과 결혼해줘>처럼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될 수도 있다. 웹소설의 세계는 계속 발전하고 있고 한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웹소설을 한 번 접해본다면 여러분의 인생에도 작은 즐거움 하나가 자리하지 않을까.
한국 웹소설계에서 재벌물 장르의 대유행을 이끈 <재벌집 막내아들>은 2017~2018년 웹소설로 연재∙발매됐고 2022년에는 웹툰(연재 중) 및 드라마로 제작됐다.
한국 웹소설계에서 재벌물 장르의 대유행을 이끈 <재벌집 막내아들>은 2017~2018년 웹소설로 연재∙발매됐고 2022년에는 웹툰(연재 중) 및 드라마로 제작됐다.
2016~2018년까지 웹소설로 연재∙발매된 <나 혼자만 레벨업>은 2018~2023년 웹툰으로 연재됐고, 지금은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해 10개국 넷플릭스에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네이버에서 2020~2021년 웹소설로, 2021~2023년 웹툰으로 연재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