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현실에 뿌리를 둔다. 영화, 드라마, 소설이 긴 호흡으로 극적인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면, 하이퍼 리얼리즘 콘텐츠는 숏폼(15초~10분 이내의 짧은 영상으로 제작한 콘텐츠) 형태로 공감대 형성에 더욱 무게를 싣는 게 차이다. 일상의 한 토막을 최대한 세밀하게 재현한 콘텐츠는 절로 ‘내 이야기다’, ‘이런 사람 꼭 있다’, ‘나도 겪었다’ 등의 격한 공감을 끌어낸다. 이처럼 하이퍼 리얼리즘 콘텐츠의 묘미는 그동안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시시콜콜한 일상의 재발견에 있다.
채널 개설 2년도 안 돼 구독자 267만 명을 보유한 ‘숏박스’는 하이퍼 리얼리즘 콘텐츠의 힘을 보여준다. 티격태격하는 남매의 현실 대화가 묘미인 ‘찐남매’와 무심해 보여도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연인을 그린 ‘장기 연애’ 콘텐츠는 과장이나 자극적인 설정 없이 공감대만으로도 대중에게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상황극 맛집으로 통하는 ‘사내뷰공업’은 편의점, 카페, 빵집, 놀이공원 등 각종 아르바이트 현장의 특징과 애환을 200% 담아낸 콘텐츠로 Z세대의 공감을 이끌었다. 20대인 PD가 실제 경험담을 살려 또래의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한 덕분에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하이퍼 리얼리즘 콩트와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운 ‘빠더너스’는 한국지리 일타 강사 ‘지리는 문쌤’ 캐릭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초창기 진짜 강사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었을 만큼 현장 강의의 특징을 현실감 있게 그려 화제가 됐고, 지리 강의는 하지 않지만 해학이 담긴 가르침으로 감동과 웃음을 모두 잡고 있다.
개그우먼 강유미의 ‘좋아서하는채널’은 롤플레잉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자율감각 쾌락반응)이라는 차별화된 장르를 독자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세신사, 동네 미용실 원장님, 입시 상담 선생님 등 일상 속 캐릭터에 완벽 빙의한 읊조림에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는 반응도 상당수다.
유튜브를 넘어
드라마로 확장하다
비교적 호흡이 짧은 하이퍼 리얼리즘 콘텐츠가 한때의 유행에 그치지 않고 점점 진화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피식대학’은 하이퍼 리얼리즘 코미디가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한사랑산악회’로 구수한 중년 아저씨를 완벽 구현한 이들은 ‘05학번이즈히어’로 2000년대 중반 감성을 유쾌하게 담아냈고, 이들 캐릭터가 2023년 신도시 아재들로 이어지는 멀티버스를 구축했다. 산악회 회원들의 자녀들이 신도시 아재로 이어지는 관계성의 확장으로 캐릭터의 밀도는 더욱 높아졌다. 신도시 육아맘을 대표하는 ‘서준맘’처럼 생생한 캐릭터가 연이어 등장하며 소비 주기가 짧은 하이퍼 리얼리즘 콘텐츠의 생명을 길게 연장하고 있다.
플랫폼의 확장도 유의미하다. 5인 미만 중소기업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은 ‘좋좋소’는 웹드라마로 출발해 시즌5까지 제작됐고, 유튜브를 넘어 국내 OTT 왓챠에도 서비스되며 숏폼 콘텐츠 이상의 저력을 증명했다. ‘스튜디오 장삐쭈’의 군대 소재 애니메이션 ‘신병’ 역시 군필자들이 인정하는 현실 반영 콘텐츠로 인기를 모았다. 이를 바탕으로 드라마가 제작됐으며, 현재 ‘신병 시즌2’가 방영되고 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며느라기’도 결혼한 여성이 마주하게 되는 현실을 세심하게 담아냈다는 호평을 얻으며 시즌2까지 제작됐다.
일상 속 희로애락의 힘
만화를 찢고 나온 비현실적인 비주얼에 감탄하고, 판타지에 가까운 막장 전개 드라마에 빠져들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 대신 내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팬데믹을 거치며 평범한 일상이 재조명된 것이 주요 이유 중 하나라고 분석한다. 코로나가 가까운 사람과의 시시콜콜한 일상, 지극히 당연한 관계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된 것이다.
여기에 유튜브, SNS 등 소통 채널이 늘면서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만의 콘텐츠를 제작하며 누구나 주인공이 되는 시대가 열렸다. 이는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장이기도 하다. 미남미녀, 드라마틱한 사연을 지닌 캐릭터가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 주인공이 돼도 자연스러운 시대. 평범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여기에 유튜브, SNS 등 소통 채널이 늘면서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만의 콘텐츠를 제작하며 누구나 주인공이 되는 시대가 열렸다. 이는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장이기도 하다. 미남미녀, 드라마틱한 사연을 지닌 캐릭터가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 주인공이 돼도 자연스러운 시대. 평범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공감과 소통을 향한 갈급함도 엿보인다. 하이퍼 리얼리즘 콘텐츠는 너무 사소해서 꺼내놓기 힘든 이야기일수록 더 큰 반응을 얻는다. 어쩐지 불편하고, 화가 나고, 신경 쓰였던 부분을 툭 까놓고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쾌감에 시청자들은 더욱 빠져든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는 공감은 생각보다 큰 위안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이퍼 리얼리즘 콘텐츠 열풍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실을 반영한 만큼 수위 조절을 하지 못하면 특정 직업군이나 세대, 캐릭터를 지나치게 희화하거나 비하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하이퍼 리얼리즘 콘텐츠의 힘은 자극이 아닌 공감에 있다. 재미를 위한 자극이 공감을 해치지 않을 때 일상의 희로애락이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올 것이다.
하이퍼 리얼리즘 콘텐츠 열풍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실을 반영한 만큼 수위 조절을 하지 못하면 특정 직업군이나 세대, 캐릭터를 지나치게 희화하거나 비하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하이퍼 리얼리즘 콘텐츠의 힘은 자극이 아닌 공감에 있다. 재미를 위한 자극이 공감을 해치지 않을 때 일상의 희로애락이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