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러 가시죠!
휴가 시즌이 다가오니 ‘멍’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물멍, 불멍, 숲멍… 대체 멍하게 있는 상태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시간은 일과 삶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줄까? 2014년 참여형 퍼포먼스로 ‘멍 때리기 대회’를 개최한 아티스트 웁쓰양에게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글 · 웁쓰양(시각예술가)
웁쓰양 작가 약력

<개인전>
2023 플레이스막2, 서울
2022 웁쓰양·왕선정 2인전 <ME, MYSELF, MINE>, 유아트스페이스, 서울
2021 <그림 좋다>, 플레이스막1, 서울
2013 <우르릉쾅>, Le Rayon Bleu, 인천

<퍼포먼스>
2023 <한강 멍때리기 대회>, 서울
2018 <부족의 탄생>, 인천
2018 <제6회 홍콩 국제 멍때리기 대회>, 홍콩
2017 <제5회 타이페이 국제 멍때리기 대회>, 대만
2015 페스티벌 봄 초청작 <패셔니스타워즈>, 서울
2014 <제1회 멍때리기 대회>, 서울
<출판>
2021 <내일은 멍 때리기>, 웁쓰양, 살림출판사
2018 <멍때리기 대회 2014-2018>, 웁쓰양, 독립출판
2015 <새우젓골이야기>, 웁쓰양·이퐁, 독립출판

<기타>
2018 창작문화공간 만석 입주작가
2017 중국 원난성 공장예술제 초청작가
2015 페스티벌 봄 오프닝 초청작가
2012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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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때리기 대회’ 창시자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는 사실 미술 작가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회화 작가로 미술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그림을 그린다.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고, 늦게 시작했다는 조급함과 비전공자로서의 불안함은 막 작가가 된 나에게 오히려 원동력이었다. 몰아치듯 탐구했고 열정이 넘쳤다. 운이 좋게 유명 평론가의 눈에 띄어 당시 신인 작가들에겐 꿈 같은 전시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미래가 밝게 느껴졌다. 시쳇말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나는 머지않아 세상을 놀라게 할 작품을 선보일 것 같았고, 누구보다 근사한 작품으로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훔칠 수 있으리라 무의식 속에서 굳게 믿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날들

그렇게 욕망의 핸들을 잡고 가속 페달을 밟으며 쭉쭉 달릴 줄 알았던 나는 작가로서 커리어를 시작한 지 고작 5년 만에 번아웃(Burnout)이 와버렸다. ‘번아웃’을 한국말로 풀이하면 ‘소진증후군’이다. 내가 몰던 자동차는 엔진이 과열돼 도로 한복판에 퍼져 버렸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경쟁심과 열등감을 동시에 심어줬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데도 붓질 하나 하나에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썼다. 작품에 몰입하는 것이 아닌 욕망 자체에 함몰돼 가고 있었다.
‘멍 때리기 대회’를 직접 표현하고 있는 웁쓰양
빈 캔버스만 마주하다가 집에 오기를 몇 달이나 반복했더니 죄책감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작가로서 빨리 시들어 버린 좌절감에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인 나는, 그런 성향 때문에 해결책을 빨리 찾아냈다. 이번에 찾아낸 해결책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였다. 그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붓을 던져두고도 비로소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게 됐다. 그후 두어 달을 작업실에 나가서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며 보냈다. 그때 사람들과 나 자신을 관찰하면서 번쩍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멍 때리기 대회’였다. ‘멍 때리기 대회’는 처음 열린 2014년부터 지금까지 대중과 많은 미디어의 관심을 받는 작품이다. 반 년 넘게 멍 때린 결과로 좋은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꺾이지 않지!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라 불리는 이러한 기획은 이후 내가 새로운 창작에 도전할 수 있는 불씨가 됐다. 던져 놓은 붓과 물감은 이미 말라버린 지 오래다. 나는 회화 작가로서의 정체성보다 ‘시각 예술가’라는 조금 더 넓은 범위 안에서 기획도 하고, 설치 작업도 하고, 독립 출판도 하면서 하고 싶은 장르를 겁 없이 넘나들었다.

그런데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됐다. 더 이상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는 못하게 됐다. 당연히 잘 나가던 ‘멍 때리기 대회’도 멈췄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언제 끝날지 모를 상황을 지켜보며 캄캄한 앞날과 답 없는 미래에 대한 우울감 속에 시간을 보냈다. 씽씽 달리던 나의 자동차를 전염병이 또다시 멈춰 세웠다.
이번에도 나는 빠르게 이 스트레스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냈다.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이 들면 그림 일기 쓰듯이 드로잉을 하며 풀었다. 매일 한두 개의 드로잉을 그려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작품을 한다는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키는 대로 느껴지는 감정들을 가감 없이 그려 나갔다. 얇은 붓펜으로 섬세하게 선을 그으며 몰두하다 보면 불안함도 조금이나마 옅어졌다.
몇 달이 지나자 드로잉 양이 제법 늘어났다. 더 나아가 나는 마침내 붓을 들고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9년 만이었다. 잘해야 한다는 욕심, 타인과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져 제대로 내 그림을 보지 못하고 거북한 욕망에 경직됐던 오래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내가 캔버스 앞에 서 있었다. 가볍고, 재미있고, 편안하게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었다. 오로지 나의 캔버스에 집중했고 더 이상 세상의 눈을 의식하지도, 경쟁심과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벅찬 기분이 들었다. 2021년과 2023년에 각각 개인전을 열었다.
웁쓰양 작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통해 번아웃을 이겨내고 다시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번아웃으로 반 년 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에도, 9년 동안 회화를 멀리했던 시간도 모두 허투루 보낸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시각과 에너지를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멍 때리기 대회’를 통해 그토록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비생산적인 일들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스스로 증명해 낸 것 같았다. 요즘의 나는 정말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

Frontalache_I_acrylic on canvas_116.8x91.0_2023
Smoker_Ⅱ_acrylic on wood_45.5x38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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